책소개
조선 후기의 실학자 홍대용의 사상을 집대성한 철학소설이다. 중국 동북지방의 명산 의무려산(毉巫閭山)을 배경으로 벌이는 문답 형식의 글이다. 허자(虛子)와 실옹(實翁)이라는 두 인물이 만나, 인사에서부터 문답 대결을 통해, 실학정신을 펴서 우주론과 역사론에 이르는 철학적 내용이 중심이다. 그래서 이 글을 철리산문(哲理散文)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다만 철학적인 글만은 아니고, 문학으로서도 대단히 흥미롭고 훌륭한 글임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바다.
의산은 조선과 중국의 경계에 있어 그 지리적 경계성이 중시되었고, 문답은 오히려 실옹의 꾸중이라고나 할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 중요한 내용이 문답으로 일관되고 소설적 구성이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허구적 인물들의 설정이나 의산이라는 배경 설정에서는 물론, 인물균(人物均) 사상과 천문지리(天文地理)론과 인물 역사론이 서로 유기적으로 치밀하게 고려된 구성에서 철학소설적 의도가 돋보인다고 할 만하다. 게다가 철학적 수준으로 평가하더라도 이 작품은 조선 18세기가 이룩한 동아시아 최고의 지적 성취라 할 만하다.
200자평
중국 의무려산에서 벌이는 허자(虛子)와 실옹(實翁)의 문답 대결, 홍대용의 ≪의산문답≫은 이미 한국 고전의 백미로 꼽을 수 있는 작품. 홍대용을 전공한 노학자와 중문학을 전공한 그의 아들이 다시 읽어 내는 홍대용은 후학에게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명저임을 반증한다.
지은이
18세기 북학파의 대표적 실학자로,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 수촌(壽村) 마을에서 뒤에 나주 목사가 된 홍력(洪櫟)과 청풍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에 벌써 과거 공부를 포기하고 고학(古學)을 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남양주의 석실(石室)서원으로 김원행(金元行) 선생을 찾아가 10년 넘게 공부했다.
20대에 들어 스승 곁을 떠나서는 고향에서 천문학에 관심을 쏟고, 스물아홉 살에는 아버지가 목사로 있는 나주로 내려가 나석당(羅石堂) 선생과 자명종과 혼천의 두 대를 만드는 데 여러 해를 보냈으며, 고향집에 천문관측소 농수각(籠水閣)을 세워 이 기계들을 설치하고 천문에 힘을 쏟았다. 서른다섯 살 때 연행사의 부사가 된 작은아버지의 자제군관(子弟軍官)이 되어 북경에 가 두 달을 머물면서 천주당과 관상대를 견학하고, 관상대장인 독일 신부를 만나 담화했으며, 남천주당(南天主堂)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여 선교사를 놀라게 했다.
특히 북경 문화 거리인 유리창(琉璃廠)에서 만난 엄성(嚴誠) 등 항주의 세 선비와의 교우관계는 그를 사로잡아, 이들과 나눈 필담을 박지원(朴趾源)의 머리말을 받아 ≪회우록≫으로 만들어 널리 읽혔고, 이 일은 북학파의 젊은 후배들을 자극하여 줄줄이 연행에 오르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뒤에 북학파로 이어졌다.
연행록을 정리하여 한문본 ≪담헌연기(湛軒燕記)≫를 이루고, 따로 한글로 쓴 ≪을병연행록≫은 2600여 쪽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여행록으로 남겼다. 이 밖에 심성론 등 유학을 다룬 ≪담헌서(湛軒書)≫, 수학책인 ≪주해수용(籌解需用)≫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저서를 남겼다.
옮긴이
김태준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하고,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18세기 조선 지식인 홍대용의 북경 여행과 체험>으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명지대학교 국문학과와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서 교수를 지냈고, 동경외국어대학 객원교수를 지냈다. 현재 동국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지은 책으로 ≪虛學から實學へ≫, ≪홍대용과 그의 시대≫, ≪홍대용 평전≫, ≪홍대용≫,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 등이 있다.
김효민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대학 중문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우송대학교 중국어학과 전임강사를 지냈고, 현재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중국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중국 과거 문화사≫가 있고, 논저로는 ≪연행 노정, 그 고난과 깨달음의 길≫(공저), <동아시아 ‘지식인-호랑이형’ 서사 연구> 등이 있다.
차례
의산문답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오륜(五倫)과 오사(五事)는 사람의 예의다. 떼를 지어 다니며 서로 불러 먹이는 것은 금수의 예의이고, 무리 지어 더부룩이 자라면서도 평안하고 느긋한 것은 초목의 예의다. 사람의 눈으로 물을 보면 사람은 귀하고 물은 천하며, 물의 눈으로 사람을 보면 물이 귀하고 사람은 천한 것이다. 하늘에서 바라보면 사람과 물은 평등한 것이다.
-35쪽
중국으로 말하자면, 북경에서는 하지 때 태양이 천정에 16도 못 미쳐서 햇빛이 약간 비스듬히 비춰 따뜻한 날씨가 이미 줄어들게 된다. 여기에서부터 북쪽으로 극에 이르면 여름 날씨가 겨울 날씨와 같다. 그 겨울철에는 땅이 얼어 터지고 얼음만 있고 물은 없다.
남해에서는 하지 때 태양이 천정과 정확하게 일치하며, 여름 태양이 그대로 내리쬐어 마치 불사르듯 대단히 뜨거워 영원히 얼음이 얼지 않는다. 그 이남으로 적도 남쪽 20여 도까지는 일 년 중 따뜻한 기후가 서로 증감이 있는데, 다만 적도의 남쪽과 북쪽은 겨울과 여름의 계절이 서로 반대가 된다.
-100~101쪽